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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ly 13, 2020

“교실에서 움직이며 수업하니 진짜 좋아요” - 한겨레

apapikirnya.blogspot.com
마을 어르신 이야기 모아 듣고
연극 한 편 만들어본 곡성 학생들
세대 뛰어넘는 생생한 예술교육

교육지원청·군청·극단 손잡고
영상·연기·몸짓 등 통합교육 진행

춤추고 노래하며 소통해본 학생들
“살 것 같아요. 이게 진짜 공부죠!”

전남 곡성 통합예술교육 현장
지난 6월29일부터 7월3일까지 전남 곡성군 5개 초등학교에서 열린 ‘기차 너머 마을’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연극 만들기 기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극단 마실 제공
지난 6월29일부터 7월3일까지 전남 곡성군 5개 초등학교에서 열린 ‘기차 너머 마을’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연극 만들기 기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극단 마실 제공
찔레꽃 피면 생각나는 울 엄니, 네가 건강해야 자식 거둔다고 밥풀로 부친 봉투를 쥐어 주셨던 엄니, 찔레꽃 지면 보고 잡은 울 엄니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잡숫게 할 것인디…. 불효자식은 먼 산에 올라 초목고(목놓아) 운다네.”(삼태리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 뭐더게 샀냐 있는디 다 있는디, 두 개나 있는디 선풍기, 뭘라고 또 사왔냐? 뭐더게 샀냐 있는디 다 있는디. 두 개나 있는디 선풍기, 검나 존 놈으로도 사왔네.”(태평리 할머니가 들려준 선풍기 사연) 지난 3일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중앙초등학교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을 만든 전남 곡성지역 초등학생들은 모두 삼태리, 태평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작품’ 하나씩을 만들어 올렸다. 엄마 아빠 대신 같이 사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부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주고받는 선물에 담긴 애틋함까지 5분 남짓의 짧은 무대에 담겼다. 아이들은 이날 시나리오 작가이자 배우, 연출가가 됐다.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지난 2년 동안 곡성을 돌아다니며 이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채집한 ‘극단 마실’ 예술가들의 노력이 컸다. 조손가정과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의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전라남도 곡성교육지원청과 곡성군, 극단 마실이 예술교육 3주체가 되어 협업으로 진행한 ‘기차 너머 마을’ 프로그램이 지난 6월29일부터 7월3일까지 진행됐다. 기차 너머 마을은 극단 마실이 2018년부터 곡성군과 손잡고 예술교육 워크숍을 열어온 결과물이다. 극단 마실 제공
전라남도 곡성교육지원청과 곡성군, 극단 마실이 예술교육 3주체가 되어 협업으로 진행한 ‘기차 너머 마을’ 프로그램이 지난 6월29일부터 7월3일까지 진행됐다. 기차 너머 마을은 극단 마실이 2018년부터 곡성군과 손잡고 예술교육 워크숍을 열어온 결과물이다. 극단 마실 제공
예술교육, 사각지대에서 꽃피우다 전라남도 곡성교육지원청과 곡성군, 극단 마실이 예술교육 3주체가 되어 협업으로 진행한 ‘기차 너머 마을’ 프로그램이 지난 6월29일부터 7월3일까지 진행됐다. 기차 너머 마을은 극단 마실이 2018년부터 곡성군과 손잡고 예술교육 워크숍을 열어온 결과물이다. 보통 연극 등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방과후 활동으로 열리는데 기차 너머 마을은 달랐다. 실제 수업시간인 1교시부터 4교시까지 5일 동안 20시간을 확보해 진행했다. ‘공교육 현장 중심에서 아이들의 예술적 표현력을 키워줘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움직임과 노래, 연기로 표현해내는 것이 바로 전인교육’이라는 지역 교육청 관계자들과 현장 교사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활동 진행에 어려움이 컸고 품도 많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체온 확인, 소독·방역을 철저히 하며 진행했다. 아이들 150명이 참여한 연극 모둠 수를 대폭 늘려 한 무대에 서는 인원을 최소한으로 조정하고 마스크를 쓴 뒤 수업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기획 회의를 시작했고 올해 2월부터는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곡성군 관내 초등교사 12명과 교육지원청, 곡성군은 여러 차례 회의와 예술교육 연수를 진행하며 3주체 협력 구조로 기차 너머 마을을 꾸려왔다.
죽곡초, 곡성중앙초, 옥과초, 오산초, 고달초 등 곡성지역 5개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은 지역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뒤 한 편의 연극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극단 마실 제공
죽곡초, 곡성중앙초, 옥과초, 오산초, 고달초 등 곡성지역 5개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은 지역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뒤 한 편의 연극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극단 마실 제공
마을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죽곡초, 곡성중앙초, 옥과초, 오산초, 고달초 등 곡성지역 5개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은 지역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뒤 한 편의 연극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연기와 몸짓, 음악이 결합한 예술통합교육의 결과물은 참여 학생들의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김지호 학생(죽곡초 6학년)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고 연기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하다 보니 내 생각을 몸과 표정으로 표현해낼 수 있어 좋았고 부끄러움도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이날 연극 중에서 곡성 아이들의 관심을 한데 모은 어르신의 노래가 있었다. ‘읍써 할머니’ 노래였다. “할머니 꿈은 뭐였어요?”라고 묻는 아이들 질문에 “읍써”라고만 대답해 ‘읍써 할머니’가 됐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극단 마실의 예술가들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장구를 치며 아이들에게 흥겨운 장단을 들려줬다. ‘읍써 할머니’의 이야기는 ‘읍써 읍땅께’라는 노래가 됐고 아이들은 이 할머니에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한 학생은 할머니에게 “꿈이 없었기에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할머니 말씀대로 오늘 상추는 오늘 만들어 먹고 내일 먹을 상추는 내일 만들어 먹는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만족하며 사는 행복한 분 같아요”라는 말을 건넸다. 기차 너머 마을은 지역에 애정을 가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넨 작은 선물과도 같다. 아직은 예술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사각지대에 ‘연극 씨앗’을 뿌린 곡성지역 어른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웃고 떠들고 마음껏 움직이며 학교를 살아 있는 무대로 만들어보자는 것. 아이들은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짜 살 것 같아요. 교실에서 움직이며 수업하니 제대로 숨 쉬는 기분이 들어요”라는 소감을 남겼다. 기차 너머 마을은 초등학생들이 연극 제작에 직접 참여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150명이 참여해 만든 5개 작품의 모티브가 ‘곡성 어르신들 삶의 애환과 역경’이라는 점이다. 아흔 살의 할머니는 혹독했던 시집살이를, 아흔두 살의 할머니는 조혼으로 미처 펼쳐보지 못한 꿈을 한처럼 가슴에 담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생애사 곳곳에 스며든 전쟁, 보릿고개, 남녀차별 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 지역 학생들에게 교육적 자극이 됐다. 누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랩을 만들었고 또 누구는 시를 쓰거나 영상을 만들어봤다. 그 옛날에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흔 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부모님 생각을 하기도 했다. ㄱ 학생은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할머니도 나와 같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계시더라”며 “세대 차이가 있어서 말이 안 통한다고 느꼈던 할머니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곡성 지역 초등학생 150명이 참여해 만든 연극 작품의 모티브는 ‘곡성 어르신들 삶의 애환과 역경’이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손혜정 극단 마실 대표(사진 가운데)가 아이들에게 연극 지도를 하고 있는 모습. 극단 마실 제공
곡성 지역 초등학생 150명이 참여해 만든 연극 작품의 모티브는 ‘곡성 어르신들 삶의 애환과 역경’이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손혜정 극단 마실 대표(사진 가운데)가 아이들에게 연극 지도를 하고 있는 모습. 극단 마실 제공
영상, 음악, 몸짓 등 통합교육 이뤄져 지역 교육기관·단체들과 손잡고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손혜정 극단 마실 대표는 초등교사 출신이다. 곡성에서 나고 자란 손 대표는 예술교육만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연극 등 예술이 갖는 교육 효과를 누구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봤다. 서울 등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문화예술 환경이 안타까워 고향 아이들에게 ‘즐거움의 인프라’를 선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손 대표는 “초등학생들과 지역 어르신, 배우들이 연출과 작곡, 시나리오 쓰기 등을 함께 해보면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 자체가 산 교육”이라며 “대사를 주고받고 서로의 몸짓을 보고 느끼며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생각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보는 경험을 통해 의견 조율, 소통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지요.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겠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죠.” 곡성지역에서 풀뿌리 운동처럼 이뤄지는 예술교육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오는 21일부터 8월1일까지는 곡성군 청소년 진로탐색 프로그램으로 관내 40여명의 십대들이 영상, 안무, 작곡, 연기, 연출 분야 전문가와 함께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예술을 통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각자 관심 있었던 분야의 직업을 탐색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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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3, 2020 at 02:3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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