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우는 놈이니 달래면서 봐야겠군,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크게 아프지는 않나보네, 징징 짜는 거 보니 몸이 많이 안 좋네 -
학교에서 배울 때 시진, 촉진, 청진, 타진 등의 이학적 검사는 기본이고 병력청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오래 환자를 보다보니 감(feeling)이 많은 일을 한다는 걸 알았다. 환자들이 증상을 얘기 할 때 절대 모든 걸 다 얘기하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만 얘기를 하고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살 이리저리 애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범인 잡을 때 단서처럼 툭하고 터져 나오는 수가 많다. 많이 들어주고 많이 물어보고 그래야 진짜를 얻을 수 있다. 사실 매일 보는 환자의 대부분이 그냥 가벼운 감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중에 지뢰 숨어있듯 중환이 섞여있어서 매 진료 때마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11세 여아가 배가 아픈데 장염 같다고 내원했다. 그런데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 뭔가 아이가 힘들어 보이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느낌이 왔다. 아빠 “ 주말부터 배가 가끔 아프다하고 구토를 2번 했는데 식사를 제대로 안 해서 기운이 없어요” 구토를 2번 한 아이치고는 혈색이 좀 창백해보였고 지나치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것 외에는 본인도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호흡횟수와 심박동을 체크했는데 맥박이 140회 정도. 정상이 60-110회 정도인데 상당히 빨랐고 호흡횟수도 조금 빨랐다. 배를 만졌을 때 특정한 부위에 압통도 없었지만 느낌이 이건 아니다싶었다.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 했고 며칠 후 아이가 심근염(감기 등의 합병증으로 심장근육에 염증으로 오는 것으로 급사의 원인이다)이었는데 중환자실에서 회복중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또 다른 초등학생 남자아이. 며칠 밥을 안 먹어 아이가 기운이 없다 해서 업고 왔다는 엄마. 퇴근 10분전에 내원하였고 밥맛이 없어 며칠 잘 안 먹었다며 소화제를 처방해 달라고 왔다. 앉아있는 아이는 그 상태로는 정상이었지만 며칠 밥을 안 먹는 것도 이상했고 누워만 있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길리암 바레라고 아래 하지부터 상체로 근육이 마비되는 질환이 의심되어 손을 잡고 당겨보라고 시켰고 아이는 힘이 없어 못 잡겠다했다. 이런 병이 의심되니 빨리 대학병원을 가라고 했고 엄마는 소화제 주면 될 걸 뭘 별스럽게 그러냐며 내일 일어나보고 가겠다는 걸 지금 바로 가라고 화를 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응급실 가서 호흡근육마비가 오기 시작해 바로 인공 호흡장치를 달았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큰 질환을 걱정하는 수도 있지만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그리고 평소 꾀병을 자주 호소하던 아이인 경우 쉽사리 체했다, 감기다 이렇게 단정을 해버리고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얘기한다. 의사 또한 늘 보던 환자가 다 그렇고 그런 병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진료하지만 가끔 그 속에는 위급을 다투는 지뢰가 숨어있다. 그래서 꼼꼼한 진료가 필요하고 접수 할 때의 아이의 목소리, 걸어 들오는 발자국 소리, 환자를 봤을 때 전해지는 느낌 이 모든 걸 종합해서 진찰해야 한다. 그리고 일차 의료기관은 다이소 같은 종합 판매소 같은 곳이다. 대학병원처럼 고혈압, 어깨관절 한 가지 특정분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뭔가가 안 좋은데 그게 어디에 속하는 병이고 어떤 검사가 필요할 지를 유추해내고 관찰해야 하는 곳이다. 환자들도 늘 가면 혈압 재고 별거 없던데 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몰라서 모르는 병을 알 수도 있고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함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비대면 진료 얘기가 자꾸 나온다.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었을 위하는 것인지. 도대체 환자의 진료보다 더 중요한 경제논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일개 개원의로서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다. 내가 훌륭한 의사가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의사가 되고 싶을 뿐이다.
June 28, 2020 at 05:1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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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진짜 비대면 진료는 못하겠다 - 대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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