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s

Wednesday, June 17, 2020

(인터뷰)'사라진 시간' 정진영 “사실 나도 모른다. 뭐가 진짜인지” - 뉴스토마토

apapikirnya.blogspot.com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 57. 17세에 그 꿈을 처음 꿨다. 그리고 올해 이뤄냈다. 무려 40년 만에 이룬 꿈이다. 사실 그 시간 동안 꿈을 이룰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 꿈을 하겠다는 데 어느 누가 뭐라 토를 달까 싶었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고, 40년을 기다린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였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먼저 이름 값으로 기회를 얻었단 소리를 절대 듣기 싫었다. 두 번째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수 많은 이름 모를 후배들의 기회를 가로 채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배우 정진영은 시끌시끌하게 40년 동안 간직하고 있던 영화 감독의 꿈을 이뤄냈다. 전례 없는 파격적인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 총 제작비 7억대의 초저예산 영화였다. 그는 자신이 정한 기준 아래에서 이 프로젝트를 끌고 갔고, 그 안에서 오롯이 자신의 색깔과 모든 것을 녹였고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는 기괴하다 못해 괴상한이란 타이틀이 결코 무리가 아닌 결과물로 나왔다. 영화 사라진 시간에 대한 모든 것을 정진영 감독의 입을 통해 들었다. 쉽게 이해되기 힘든 영화이기에 11답 형식으로 그와 나눈 대화 전문을 공개한다.

 

감독 정진영.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기사를 통해서 몇 차례 보도는 됐지만, ‘연출에 대한 욕심은 언제부터였나

아시는 분은 아실 텐데, 제가 이창동 감독님 초록물고기 연출부 막내 출신이에요. 우연히 출연을 하고 배우가 됐죠. 그 이후에도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감독 준비를 했으면 했는데,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에요. 능력이 안 된다고 스스로 판단한 거죠. 그렇게 잊고 지냈죠. 올해 우리 아이가 고3이에요. 순간 내가 이제 이 녀석 뒷바라지도 거의 끝이 났네 싶었죠. 그리고 나니 내가 뭐지? 싶더라고요. 그 시기에 우연히 독립영화를 하게 됐고, 영화의 본질인 얘기에 꽂혔죠. 내가 시나리오를 써볼까 싶었죠.? 재미있더라고요. 다 썼는데 결과적으로 그 시나리오는 버렸어요. 나 스스로가 완벽하게 관습에 젖어서 그 틀 안에서 얘기를 만들어 버렸더라고요. 다 버리고 새로운 틀 안에서 써보자 싶어서 쓴 게 이 영화입니다.”

 

정말 이상한 영화다(웃음). 우선 결과를 알고 넘어가야겠다. 어떤 게 진짜인 거냐

“(정색) 당연히 둘 다 진짜죠.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설명을 안하고 답도 안 줘요. 그렇잖아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영화가 아니에요. 사실 감독의 입장에선 모든 게 스포일러다(웃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내용을 다 알고 보셔도 무방할 것 같긴 해요. 이 영화는 보시는 모든 분들이 해석자입니다. 각각의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전 다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보신 기자님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그것도 맞아요.”

 

주인공 형구는 무조건 조진웅이어야 했다. 감독 정진영이 선택한 이 기준은 왜 그랬나.

하하하. 당연히 조진웅을 생각하고 썼으니 조진웅 밖엔 없었죠. 초고를 쓰자마자 곧바로 진웅이에게 보냈어요. 진웅이 스케줄이 많았고, 거절하겠지 싶었어요.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주고 거절당하자 싶어서 보냈는데, 바로 다음 날 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너무 깜짝 놀랐죠. 다음 날 제 사무실(영화사)로 왔어요. 진짜 오래된 아파트 한 켠에 마련한 공간인데 아무것도 없고 책상에 낡은 소파 그리고 노트북 하나 딸랑 있어요(웃음). 거기서 앉아서 저랑 대화하면서 이거 내가 나오는 부분은 토씨 하나 건들지 말아라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감사했고 진짜 눈물 날 뻔 했죠.”

 

감독 정진영.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실 처음엔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고 하던데

이번 결과도 작아요(웃음). 그런데 진짜 시작은 더 작았죠. 뭐 그래도 정진영이가 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품앗이 하듯 실력 있는 분들이 모였죠. 너무 감사하죠. 물론 제 기준의 가이드 라인은 있었어요. 먼저 제목이 바뀌었잖아요. 원제는 카펜터스의 노래인 클로즈 투 유였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썼거든요. 제목이랑 노래를 영화 속에 쓰고 싶었죠. 실제로 저작권도 알아 봤는데, 우리 영화의 예산으로 정한 기준에선 절대 쓸 수 없는 금액이었죠. 그런 식으로 제가 정한 기준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첫 시작보단 조금 늘어는 났죠(웃음)”

 

영화 속 주인공 형구, 감독 정진영이 배우 정진영을 바라보며 만들어 낸 인물인가

하하하, 굳이 설명을 드리자면 있을 수도 있지만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우선 저 스스로에 대한 지점은 전부 배제했어요. 출연도 아니라고 봤고. 전체 골격은 내가 바라본 나와 남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나와의 차이? 갈등? 정도. 배우이자 연예인으로 살아온 난 그 지점을 가장 심하게 겪어본 당사자였고. 결과적으로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는 영화가 나왔죠. 전 이게 맞아요. 그래서 처음에 여러 분들이 시나리오 보여 달라고 해도 절대 안보여 줬어요. 이준익 감독도 그렇게 보여 달라고 하는데 안 줬죠. 그들 같은 선수의 눈에 이게 처음 보여지면 이거 고쳐라’ ‘저거 고쳐라 하면서 쏟아지는 조언을 받았겠죠. 그냥 내 생각대로 밀고 나가자 싶었어요.”

 

배수빈 출연 분량과 조진웅 출연 분량의 톤 앤 매너라고 할까. 정말 너무 다르다. 의도한 지점이 있나

의도한 지점이 있죠. 우선 배수빈이 출연한 지점은 1970년대 느낌이 들게 요구했어요. 연기나 대사도 그렇게 주문했는데 배우들이 힘들어하더라고요(웃음). 반대로 조진웅이 출연하면서부턴 리얼리티가 살아나잖아요. 미스터리함도 살아나고. 앞과 뒤가 충돌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죠. 앞과 뒤가 전부 같아 버리면 관객들이 더 혼란스러워하거나 몰입 자체가 안될 것이라고 봤어요.”

 

감독 정진영.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속 화재 장면. 정말 궁금한데 그 집 진짜 불태웠나?

하하하. 그 집은 실제로 집주인 분이 사는 집이에요. 큰일 나게요(웃음). 충북 보은에서 우리 영화를 찍었는데 거기에 실제로 있는 집이에요. 2층만 세트로 만들어서 태웠죠. 영화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한 100군데 정도는 헌팅을 다닌 거 같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그 집은 헌팅에서 본 첫 번째 집이에요. 처음에는 주인 분께서 허락을 안 하셨는데 나중에 연락이 왔죠. 너무 기뻤어요.”

 

등장 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본명을 쓰시는 분이 있다. 이유가 뭔가

정해균 배우가 배역들 가운데 유일하게 본명을 쓰죠(웃음). 사실 그 배역에는 다른 이름이 있어요. 해균이는 제가 황산벌 찍을 때 처음 만났죠. 그때 딱 두 씬 나오는데 너무 잘하는 거에요. 알고 보니 제 고교 후배더라고요. 하하하. 참 실력도 좋고 괜찮은 배우인데 그 실력에 비해선 아직 널리 알려지지가 않았잖아요. 제가 널 해균이라고 이 영화에서 불러서 이제는 널 누구나 다 알아보는 배우 정해균으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막 웃더라고요. 하하하.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딱 이 이유 때문입니다.”

 

당연히 거친 느낌이 많다. 좀 더 편집에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 상업적으로 도움이 됐을 텐데

이번 영화가 미스터리로 홍보가 되는 것 같은데. 난 장르를 규정하기 싫어요. 뭔가 장르에 규정이 되면 영화 마지막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전부 내놔야 하잖아요. 난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능력도 안돼요. 그냥 관습이나 어떤 규정 안에 영화인으로서 얽매여 있었는데 그것만큼은 깨고 싶었어요. 그런 식으로 내 느낌대로 투박하게 가고 싶었죠. 자세히 보시면 달리’(카메라를 고정하고 움직이는 간이 촬영용 수동차량)를 쓴 장면이 없어요. 전문 고정샷이나 들고 찍은 헨드헬드에요.”

 

감독 정진영.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첫 연출작, 정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정작 촬영은 별로 안 힘들었어요. 카메라 앞이나 카메라 뒤나 내가 할 일만 하면 됐으니. 물론 연출이 쉬웠단 얘기는 아닙니다(웃음). 사실 정작 힘이 들었던 점은 후반작업이에요. 시나리오는 그냥 쓰면 되잖아요. 현장에선 내가 배우였고, 연출자인 감독이 어떤 요구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을 했었고. 그런데 후반작업은 일종의 매커니즘 이잖아요. 배우만 수십년을 했던 제가 편집이 뭔지 색보정이 뭔지 이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일일이 후반작업을 하는 곳을 찾아가면서 배우는 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하하하.”

 

감독 정진영은 또 볼 수 있는 것인가

우선은 어릴 적 꿈을 이뤘으니 됐어요. 그런데 또 연출자로 나선다면. 그냥 꿈을 위해서 두 번째를 했다? 그것만으로는 절대 접근하면 안될 거 같아요. 책임이 따라야 하는 데 제가 그럴 깜냥이 될지 모르겠어요. 배우는 연기로 평가를 받는데, 감독을 경험해 보니 그냥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에요. 쉽게 접근하고 쉽게 대답해야 할 질문은 아닌 거 같아요.”

 

감독 정진영.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아마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다. 형구가 진짜인가. 수혁이 진짜인가. 형구는 진짜 사람을 죽인 건가

하하하. 즉답을 원하신다면. 저도 모릅니다. 전 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답을 드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하하.”

 

Let's block ads! (Why?)




June 17, 2020 at 08:00AM
https://ift.tt/2BlBmWP

(인터뷰)'사라진 시간' 정진영 “사실 나도 모른다. 뭐가 진짜인지” - 뉴스토마토

https://ift.tt/2UAZ4Fp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