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반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여준 통치 스타일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중국과 패권 전쟁에서 각종 보복관세 조치를 발동하고 급기야 국교 단절 직전 단계인 외교공관 폐쇄절차까지 단행했다. 동맹국을 상대로 미군 주둔비용을 더 받아내기 위해 독일 내 미군을 지금보다 1만2000여명 감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한국을 상대로도 반년 넘게 방위비 협상을 끌고 있다.
코로나19 차단에 실패한 뒤에는 제약업체들에 러브콜을 보내 백신·치료제 사전 생산물량을 매점매석하더니 최근에는 `약값 인하` 행정명령에 서명해 제약업체를 상대로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안전하고 무사히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미룰까?"라며 처음으로 선거 연기론을 제기했다. 선거 연기가 실제 이뤄질 가능성을 차치하고, 그가 선거 연기론이라는 연막작전을 펼치는 표면적 이유는 과연 무엇일가.
올해 미국 대선의 가장 특징은 단연 `우편투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역대 최대 규모의 우편투표가 이뤄질 전망이다. 유권자들이 현장투표를 기피하고 지역 선관위로부터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받아 지지후보를 기입한 뒤 다시 이를 우편으로 선관위에 보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과도한 우편투표가 자칫 11월 대선 결과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경합지역에서 다량의 우편투표 용지가 사라지거나 뒤바뀔 수 있고, 해외 체류하는 미국 국적자들의 부재자 우편투표가 미국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미국 선거에 개입하려는 해당국의 부정행위가 시도될 수도 있다. 최근 대선 100여일을 앞둔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결정하며 중국과 최고 수준의 갈등관계를 연출시키는 것도 다분히 이번 11월 대선에서 중국의 선거개입 위험성을 띄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연기론`과 `우편투표 위험성`을 거론하는 배경에는 `지지율 위기`도 반영돼 있다.
팬데믹 대응 실패로 인해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대선 지지율에서 최악의 수세에 몰리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현재 바이든 전 부통령의 전국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은 50.1%로 트럼프 대통령(41.7%) 보다 8.4%포인트 높다.
문제는 지지율 하락세가 단기 현상이 아닌 6월 초부터 두 달 간 뚜렷한 하향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초 미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1%에 그쳐 바이든 전 부통령(55%)과 무려 14%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이는 5월 동일한 설문조사(5%포인트 열세)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7월 들어 발표된 유력 매체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보다 앞선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거 필패`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감을 높이는 사례는 또 있다. 바로 대선 돈줄이 말라간다는 것이다.
최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월마트 상속자 크리스티 월턴, 유명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 창업주 앤디 레들리프, 울버린 석유가스의 시드니 잰스마 이사회 의장 등 공화당을 후원했던 거부들이 트럼프 낙선 캠페인(링컨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다고 전했다. 대선 자금줄인 재계의 거물들이 트럼프 낙선에 베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선이 95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는 그가 `선거 연기론`과 `우편투표 위험성`이라는 연막작전을 피우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주머니 속에 숨은 최후의 반격 카드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가리킨다. 바로 대선 개표 결과가 나쁘게 나올 때 이의를 제기하는 방어 수단인 `재검표` 카드다.
최근 20년 간 미국 대선에서 가장 큰 특징은 빈번해진 `재검표 요구`다.
미국 대선은 한국의 직선제와 달리 간접선거 형태에 가까운 선거인단제를 유지하고 있다.
오는 11월 3일 대선일의 전체 득표율을 단순 계산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득표율은 11월 3일 투표로 가르마가 타지는 각 주별 트럼프 대 바이든 간 득표율이다. 주별 득표율을 따져 12월에 치러질 선거인단 투표에 참여할 선거인단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제가 단 1표의 차이로도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전원이 모두 승자에게 배정된다는 사실이다.
2016년 11월 상황을 보자. 당시 위스콘신 주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간 득표율 차이는 0.8%에 불과했다. 그런데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위스콘신주에 배정돼 12월 투표권을 행사할 선거인단 10명이 모두 트럼프 후보에게 배정됐다.
이런 식으로 2016년 11월 대선에서 각 주별 득표율과 이에 따른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전체 538명(각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의 총합) 중 트럼프 후보가 과반이 넘는 290명을, 클린턴 후보는 233명을 얻어 승리한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억울했는지 힐리러 클린턴 후보는 0.8% 차이를 재검증하겠다며 위스콘신주 등에 대한 재검표를 요구했다. 실제 재검표가 이뤄졌지만 클린턴 후보가 기대했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치열한 재검표 논쟁이 2000년 11월 엘 고어 민주당 대선 후보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 간에 있었다.
당시 승부처인 플로리다에서 고어 후보가 0.5% 차이로 부시 후보에게 밀리면서 플로리다주에 배정된 25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놓쳤다.
이에 고어 후보와 민주당은 플로리다주 67개 카운티에 대한 재검표를 요구했는데 그 적정성을 두고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재검표 불가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부당한 판결이라고 반발했지만 고어 후보는 "연방대법원을 정치에 휘말리게 할 필요가 없다.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게 국익을 위하는 길"이라며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다시 트럼프 대통령으로 돌아와서 보면, 그는 2000년대 이후 빈번해진 재검표 논란이 자신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는 2016년 대선에서 일반 국민투표 전체 득표율에서 클린턴 후보에 뒤지고도 선거인단이 많이 배정된 텍사스, 플로리다주를 비롯해 아슬아슬하게 이긴 위스콘신주 등 경합지 선거인단을 쓸어가 승리했다.
그런데 올해 11월 대선의 경우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후보는 뛰어난 통치력과 매력적 외모·언변, 카리스마적 이미지 없이 자신의 팬데믹 정책대응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을 챙기며 지지세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팬데믹 전만 해도 재선이 유력시됐던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간 화가 나는 일이 아니다.
또한 대선 때까지 남은 석달 여간 어떻게든 정책실기로 돌아선 민심을 되찾아 바이든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줄여야 한다.
당연히 11월 3일 투표에서 4년 전 힐러리 대통령과 치렀던 때보다 더 많은 경합지역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최근 일고 있는 `우편투표 독려운동`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2020년 미국 대선일은 11월 3일이 아닙니다. 실제 대선일은 10월 20일입니다"라는 글을 돌리고 있다.
유권자가 우편으로 보낸 투표용지가 유효하게 적용되려면 오는 10월 20일까지 관할 선관위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후보에게 지지율이 밀리는 가운데 젊은층에서 확산하는 우편투표 운동을 견제하고 11월 3일 투표일 이후 재검표 요구 등 불복절차에 대응하기 위해 선거 연기론과 우편투표 부정이라는 연막전술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일은 11월 3일이 아닙니다. 실제 대선일은 10월 20일입니다".
대선 재검표 반격까지 염두해두면서 당장 민주당 지지층들이 돌리고 있는 유권자 우편투표 운동을 차단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트럼프 대통령의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과연 효과를 거둘지 판가름할 날이 95일 앞으로 다가왔다.
데뷔작 ‘모차르트’ 무대 10년 만에 다시 서
활동 어렵던 시절 뮤지컬로 제2인생 시작
“티켓 파워 연연하지 않고 무대 서겠다”
그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10년 만에 뮤지컬 모차르트!>(세종문화회관·8월23일까지) 무대에 다시 오른 김준수를 보면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어린 시절의 환영과 대화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찐 눈물’을 흘린다. “원래 우는 설정이지만 ‘척’이 아니라 매번 진짜 운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29일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모차르트의 심정이 내 심정 같아 자꾸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2010년 모차르트!>로 뮤지컬계에 데뷔했어요. 당시 1년 가까이 일을 못 하다가 뮤지컬을 만났죠.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을까,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을까, 여러가지로 답답한 시절이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차르트가 하고 있었어요. 그때 심정이 떠올라 유독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아요.” 당시 동방신기가 제이와이제이(JYJ)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풍파를 겪으며 마음껏 활동을 하지 못했던 김준수는 “막연하게 음악과 노래가 있어 뮤지컬에 도전했었다”고 말했다. 탈출구가 없을 것 같던 시절 모차르트!>가 마음을 치유하는 디딤돌이 돼준 덕분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정상에 올랐고, 10주년이 되는 2020년 운명처럼 다시 모차르트!>를 만난 것이다. 그는 “다시 만난 모차르트!>가 초심을 잃지 않게 해줬다”며 “10년을 돌이켜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다시 돌아가면 지난 10년처럼은 못 할 것 같다”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아이돌로 활동하며 쌓은 팬덤이 뮤지컬로 이어져 별 어려움이 없었을 거라는 시선과 달리, 그는 “뮤지컬에선 늘 도전이었기에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가장 힘들었던 건 뮤지컬계와 관객의 시선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수나 배우가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가수 하다가 할 것 없으니 돈 벌려고 왔구나’ 하는 시선이 따라다녔죠. 이해는 했지만 심적으로 힘든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알아주겠지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어요.” 발성부터 바꿔야 했다. “10년 전 뮤지컬계에서 주류였던 성악 발성을 무작정 흉내 내기도 했지만 그들을 뛰어넘을 순 없었어요. 시행착오 끝에 허스키한 목소리를 그대로 활용하고 샤우팅을 살리는 등 김준수만의 무기를 만들었죠.” 그는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만의 감성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준수는 모차르트>를 시작으로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디셈버> 드라큘라> 데스노트> 도리안 그레이> 엑스칼리버>까지 8편의 작품을 하는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뮤지컬 배우’가 됐다. 그와 함께 연기했던 박강현이 “무대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아붓는 게 놀라웠다”고 말할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난 게 장점으로 꼽힌다. 그와 작업했던 한 관계자는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시로 얘기하고 내 작품처럼 참여한다”고 말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무대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슬럼프도 겪지 않는 등 무던한 점이 그를 성장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준수의 성장은 뮤지컬 시장의 성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가 꾸준히 활동하면서 가수·배우의 뮤지컬 진입이 활발해졌고, 박효신, 테이, 규현 등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국외 팬이 몰려오는 뮤지컬 한류 바람의 시작점도 김준수였다. 하지만 그의 등장은 또한 배우의 몸값을 전반적으로 뛰게 해 뮤지컬 제작비가 치솟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배우도 출연료로 말하고 축구 선수도 연봉으로 말하는데, 뮤지컬 배우만 감춰야 하는 분위기가 안타까웠다. 뮤지컬 배우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논란도 됐지만, 안 되는 걸 달라는 게 아니다. 뮤지컬계에서 누가 얼마를 받는 게 흠이 아닌 자랑일 수 있도록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준수는 예상외로 솔직했다. 그는 “뮤지컬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에스엠을) 나올 당시 노래 자체를 포기했어요. 당시 더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겠어요. 비연예인으로 살더라도 지금보다 행복하고 싶어 나온 거죠. 그런데 뮤지컬을 만나 이렇게 노래도 하고 사랑도 받고 있죠. 뮤지컬이 가수로서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줬어요.” 그가 창작 작품에 주로 출연한 것도 그런 뮤지컬에 보답하는 마음이 커서였다. “모차르트!>를 하면서 창작 뮤지컬은 위험 부담이 커 제작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려면 창작 작품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도움이 된다면 마다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하지만 엑스칼리버>처럼 그의 연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때가 있다. 때로는 ‘김준수’의 이름에만 기댄 작품이 아니냐는 비판도 따른다. 이에 대해 그는 “2014년 초연 때 혹평을 받았던 드라큘라>가 2020년 시즌엔 서사를 넣고 음악을 정비해 호평을 받은 것처럼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모차르트!>
힘차게 달리기만 했던 10년, 앞으로의 10년과 20년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그는 “목표는 없다. 단지 티켓 파워가 떨어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뮤지컬계의 일원으로 연기하고 싶다”며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음악인 만큼 내가 하는 작품에서 음악은 무조건 좋을 거란 점은 자신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에서 이준기가 서현우 앞에서 감정을 지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30일 방송되는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연출 김철규/ 극본 유정희/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몬스터유니온) 2회에서는 백희성(이준기 분), 차지원(문채원 분)의 행복한 가정 아래 잔혹한 비밀이 숨겨진 지하실이 베일을 벗는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금속공예 공방 아래 지하실 속 백희성과 김무진이 포착됐다. 차지원(문채원 분) 앞에서 다감다정한 미소를 보여주던 남편의 얼굴이 아닌 자신의 진짜 정체 도현수의 싸늘한 얼굴을 드러낸 백희성의 표정 변화는 등줄기에 소름을 돋게 한다.
또한 손발이 묶이고 테이프로 입이 봉쇄된 기자 김무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올려다보고 있다. 동창인 도현수가 형사 차지원의 남편 백희성으로 신분 세탁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김무진은 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고 과거 ‘가경리 이장 살인사건’의 용의자로서 현재 수배상태에 놓인 것까지 인지하고 있던 상황.
이에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특종을 터트릴 수 있는 김무진을 떠보며 아무렇지 않게 대하던 백희성이 그를 지하실에 가둔 모습은 일촉즉발의 서스펜스를 예고한다.
특히 백희성이 김무진의 입을 틀어막은 거친 모습은 한층 긴장감을 배가, 두려움과 땀으로 범벅된 김무진이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무사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과연 도현수의 신분을 버린 백희성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으며 김무진이 언급한 18년 전 ‘가경리 이장 살인사건’의 범인이 그일지, 과거와 현재 속 숨은 진실을 추적할 예측불가의 전개가 기다려지고 있다.
가치는 ‘창조된다’는 게 현대 경제 체제의 주된 사고였다. 가치 창조는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가치라고 일컫는 것은 ‘부(富)’, 수치로만 표현되고 통용되는 오늘날의 가치에 ‘창조’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더 높은 수치를 위해 불법과 기만이 개입되는 ‘가치의 창조’는 사실 ‘가치의 착취’가 아닐까.
신간 ‘가치의 모든 것’은 오랜 시간 경제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해온 가치에 대해 이 같은 의문을 던지면서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에 맞는 개념의 재정립을 주장한다.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균열이 발생한 지금, 경제학의 기본 개념부터 다시 짚어보자는 것이다.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저자가 내놓은 것은 바로 ‘가치 착취’라는 개념이다. 가치 착취는 자원을 이전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의 경제가 상정하는 가치 개념은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쓴, 부를 빼앗기 쉽게 만들어진 가치 착취’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기업은 고객·주주 가치 극대화를 외치지만, 실상은 재무상의 성과와 단발성 주가 부양에 그칠 뿐이다. 책은 그 대표적인 예로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꼽는다. 단기적으로 주당 순이익을 높이고 경영자와 주주에게 가는 몫을 키우지만, 그 이면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막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 외에도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명목하에 경영자들은 이윤을 내기 위해 생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하청에 하청을 주며 맹렬한 세계화에 나섰다. 사모펀드를 비롯한 인수 합병 기관들은 가치에 굶주린 새로운 투자자들이 전 세계 주식시장을 공격하도록 이끄는 기수가 됐다. 가치라는 개념의 변질과 몰이해는 때로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혁신 기업들에 대한 냉철한 진단도 인상적이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고를 기반으로 기업의 혁신은 그동안 자본주의의 새 동력으로 추앙받았다. 이들 기업이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는 경제의 활력과 인류 삶의 편의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막대한 이윤과 시장 점유율은 그들이 창조한 가치에 비해 과도하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등의 기술과 신약의 탄생에는 공공기관의 지원이 들어가지만, 독점적인 수익은 기업의 몫이다. ‘리스크는 사회화되고 보상은 사유화되는’ 혁신의 모순이다.
책은 ‘소수의 부의 축적’에서 ‘공생의 자본주의’로 가치의 개념을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불평등 해소, 녹색 경제로의 전환 등 오늘날의 경제가 처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 ‘부가 과연 어디서 창출되는지’를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공공 영역의 역할을 강조한다. 공공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투자, 개입은 통상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 테슬라의 전기차 개발에는 거액의 공공 자금이 투입됐다. 공공 영역은 의료·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서도 공공 영역이 단순히 부의 재분배를 넘어 부의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와 공공 기관이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소극적으로 시장을 보조하는 행위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시장을 구성하는 행위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공 자금으로 개발한 약품 가격에 상한을 두거나 공공 자금으로 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할 때 이윤을 투기적인 자사주 매입에 쓰지 말고 생산에 재투자하도록 조건을 다는 식이다. 이런 공공의 참여야말로 “공적 자금을 지원한 혁신의 이득을 승자가 독식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역기능과 그에 대한 처방전은 이미 수많은 책에서 제시돼 왔다. 그 논의에서 ‘고정값’으로 설정돼 있던 가치의 개념을 다시 경제학 이론의 출발점으로 가져와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이 책은 차별화된다.
책의 서문은 1930년대 미국 광산업계의 노조 운동을 주도했던 빅 빌 헤이우드의 발언을 소개한다. ‘야만적인 금광업계 거물들은 금을 탐사하지도 않았고 금을 캐지도 않았고 금을 가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희한한 연금술인지 금은 전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2020년에도 유효한 질문은 왜 지금 ‘가치’에 대한 개념 재정립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2만 3,000원.